딕은 발아래서 빌런들과 싸우고 있는 아기새를 바라보았다. 사라졌다 다시 돌아온, 배트맨의 사이드킥이자 보이-원더. 빨간 베스트와 노란색 망토, 초록색 장갑과 신발. 배트맨에 비해 다소 화려해보이는 색상의 코스튬을 입고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모습은 장난꾸러기 요정을 연상시켰다. 다 큰 성인들을 제 입맛대로 이리저리 휘두르는 아기새의 모습은 재바르고, 유연했으나 딕이 보기에는 아직 한참 부족했다. 이런 아기새를 두고 배트맨은 대체 어디로 갔는지. 가볍게 혀를 차던 딕이 아랫쪽으로 사뿐히 뛰어내렸다. 적당한 크기의 암기를 아기새를 향해 던졌고, 아기새가 영민하게 피해내자 그 뒤에 있던 성인 남자의 가슴에 꽂혔다. 급소를 찔린 남자는.곧 털썩 쓰러졌다. 그것을 눈 앞에서 지켜본 아기새가 딕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이런, 도와준 건데. 그런 눈빛은 너무하잖아."
"도와줬다고? 방금 그건 나한테 날아왔었어!"
"난 네가 피할 줄 알고 던진 거였어. 넌, 배트맨이 훈련시킨 아기새잖아?"
만약 피하지 못했다면, 그게 네 운명이었겠지. 그렇지않아? 어짜피 이 고담에서 자경단으로 활동한다는 것은, 여차하면 목숨을 내놓아야한다는 것이니까 말야. 딕이 여상스러히 말했고, 아기새는 딕에게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거리를 벌렸다. 그러나 아기새가 벌린 세세한 거리는 딕에게 있어 있으나마나 한 것이었다. 딕은 구태여 그 사실을 입밖에 내는 수고를 하지 않고 아기새가 원하는대로 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법정에서 판결이 내려진 것도 아니었고, 그저 개인적인 호기심이었으니까.
"넌 누구고, 목적이 뭐야?"
"사냥꾼, 밤의 사냥꾼이야. 원래는 사냥감이 정해졌을 때에만 움직이지만... 배트맨이 새 사이드킥을 들였다고 해서"
궁금해져서 보러왔지. 내심 어떤 아이일까 기대했는데, 말이야. 딕은 노골적인 실망을 들어냈다. 얼굴이 보이지 않더라도 목소리에서 다분이 느껴지는 실망감에 아기새는 분노에 부르르 떨면서도 용케 달려들지 않았다. 이것은 합격일까. 물불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다면, 직접 배트맨을 찾아가서 아기새의 부족함을 일깨워 보이-원더에서 끌어내렸을 것이었다. 아기새는 제 발에 무언가 차이는 것을 느끼고 아래를 바라봤다가, 고개를 들었다. 조막만한 손을 힘주어 꾸욱 쥐었고, 아기새가 소리내어 물었다.
"나를, 도와줬다고 했지? 왜 날 도운건데?"
"보이-원더라는 네가, 이정도 수준의 녀석들에게 당하면 내 입장이 조금, 곤란해져서 말야."
그럴바에야 내 손으로 새로운 보이-원더를 처리하는 게 낫지. 아아, 긴장하지마 말이 그렇다는 거야. 기본적으로 타겟이 아닌 동물들은 잡지 않는 주의거든. '기본적으로'라는 말은 필요하다면 잡겠다는 소리잖아. 맞아, 필요하면 잡아야지. 내가 손해볼 순 없으니까. 하지만, 아기새는 아슬아슬하게 합격점이니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고담에서 사라졌던 작은 요정, 보이-원더가 다시 돌아왔다. 딕 그레이슨은 배트맨의 새로운 사이드킥이 생겼다는 소리를 듣고서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그가 아는 배트맨이라면 결국에 새로운 사이드킥을 들일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다만 의외인 것은 그가 생각보다 일찍 사이드킥을 맞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딕은 이미 배트맨을 떠난 사람이었다. 배트맨, 그가 무엇을 하던 상관없었다. 없었을 것이다. 그가 딕의 옛 이름을 끄집어 내지 않았더라면.
보이-원더, 로빈. 그것은 본디 딕의 이름이었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딕에게 지어준 또 다른 이름이었고. 배트맨의 사이드킥으로 활동할 때 그 이름을 사용했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건 딕의 것이었다. 그의 후임이 누구이건 그 이름을 사용해선 안됐다. 딕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이 없다면 입지 않는 옷이었으나, 필요하다면 입을 수도 있는 코스튬을 집어 들었다. 살짝 묵직한 감이 없잖아 있는 코스튬을 입고, 걸어두었던 탈을 쓰자. 거울 앞에는 한마리의 부엉이, 탈론이 서 있었다. 거울 앞에서 제 매무새와 무장을 확인한 탈론이 창문을 향해 걸어갔다. 덜컹. 창문을 열어 젖히고 창문틀에 올라탔다. 탁, 가볍게 창문틀을 차고 뛰어 내렸다. 추락하는 가운데 근처 건물에 갈고리를 걸어, 와이어를 잡았다. 와이어를 잡은 손이 마침내 단디 손에 잡았고 와이어와 함께 이동하던 탈론은 건물 벽에 발을 대어 충격을 감소 시켰다. 곧 와이어를 따라 올라가 건물 옥상에 올라왔다. 와이어와 갈고리를 갈무리 한 뒤 탈론은 배트맨과 로빈이 활동하고 있을 장소로 이동했다.
굳이 가깝지 않은 거리여도 상관 없었다. 배트맨에게 교육받았을 로빈이 사람 인기척을 못느끼지도 않을테고. 좀 떨어진 위치에서 탈론은 배트맨의 아기새를 내려다보았다. 키가 작고 꽤 외소한 몸에 일전에 저가 입었던 옷과 같은 디자인의 코스튬을 입고 날뛰고 있었다. 과거의 그보더 거칠었고, 과거의 그보다 요령이 없었다. 대체로 아기새가 날뛰고나면 배트맨이 마무리 짓는 모양새였다. 배트맨의 한마디에 손을 거두는 것보니 이러니저러니해도 배트맨을 잘 따르는 것 같았다. 하긴 그러지 않았다면 저 아기새도 로빈이 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아기새는 방방 뛰는 것이 또래의 아이들 같기도 했다. 그가 입는 옷과 그 이름만 아니었다면, 좀더 사랑스러웠겠지.
"안녕? 아기새야."
그는 배트맨과 아기새가 떨어진 틈을 타, 아기새에게 접근했다. 아기새는 갑자기 나타난 탈론을 바싹 경계했다. 배트맨이 아기새에게 탈런에 대해 이야기했을리는 없을 테고 갑자기 나타난 낯선이에 대한 경계일테지.
"당신 누구야?"
가까이서 본 아기새는 훨씬 더 미숙했다. 저런, 아무리 제압했더라도 확인을 했어야지. 탈론은 아기새의 뒤쪽에서 슬금슬금 접근하는 빌런 하나에게 암기를 던졌다. 암기는 정확히 급소를 찔렀고 그대로 즉사했다. 힘 없이 뒤로 쓰러지는 시체를 당황한 듯 아기새가 쳐다보았다.